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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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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울진의 문화를 먼저 생각합니다.

    선사시대

    북면 주인리 석수동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들이 출토되어 이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죽변리 유적과 후포리 유적 등 신석기시대와 봉산리 주거지와 다수의 고인돌 등의 유적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이 지역에서도 활발한 사회분화가 일어났다.



    초기국가시대

    초기국가(읍락국가)시대에는 울진지역에 진한12국 중의 하나인 ‘우중국〔優中國, 또는 우유국(優由國)〕’이라는 작은 국가가 있었으며, 마한·진한·변한의 삼한 중 진한 연맹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에 사로국(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계속해서 신라의 영토에 소속되어 오다가 고구려 장수왕 때 잠시(468~481) 고구려에 복속되었으며, 이때 울진지역은 ‘우진야현〔于珍也縣, 또는 고우이(古·伊)?어진(御珍)〕’, 평해지역은 ‘근을어현〔斤乙於縣〕’이라 불렀다. 울진봉평신라비(524)에는 ‘거벌모라, 남미지촌, 갈시조촌, 아대혜촌’ 등의 지명이 보이며, 창녕진흥왕척경비(561)에는 ‘우추〔于抽〕’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신라 경덕왕 16년(757) 전국적으로 군?현의 명칭을 한자식으로 고칠 때, 우진야현을 ‘울진군〔蔚珍郡〕’으로 고쳤다. 속현으로 ‘해곡현〔海曲縣, 또는 해서(海西)〕’이 있는데, 고구려 때에는 ‘파단현〔波旦縣, 또는 파차(波且)?파풍(波豊)?파조(波朝)〕’이라 하였다.



    고려시대

    고려태조 23년(940년경)에 울진현(蔚珍縣)이라 하여 현령을 두었으며, 고려 초부터 울릉도를 관할하기 시작하였다. 평해지역은 태조 23년(940) 또는 성종 14년(995)에 ‘평해현〔平海縣〕’으로 고쳤다. 현종 9년(1018)부터 고종 46년(1259)까지 예주(지금의 영해)의 속현이 되었다. 충렬왕 때(1274~1308) 고을사람 황서가 왕을 따라 원에 들어가서 공을 세웠다 하여 평해군〔별호는 기성〕으로 승격되는데, 충렬왕 23년(1297)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지명의 변경없이 울진현〔별호는 선사(仙?)〕과 평해군으로 지속되어오다가 고종 32년(1895) 갑오경장시 지방관제를 개정하면서 울진현은 울진군으로 승격됨. 울진현의 소속이었던 울릉도가 고종 19년(1882) 평해군으로 이관되었으나, 1900년 평해군에서 분리되어 울도군이 됨.



    일제강점기

    1914년울진군과 평해군이 통합되어 울진군〔蔚珍郡〕이 됨(15면에서 8면으로 됨).


    현대

    -2015년서면을 금강송면으로 원남면을 매화면으로 행정구역 명칭 변경
    -1994년시?군 자치구의 관할구역변경에 관한 규정으로 서면 왕피리 갈전이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에 편입되면서 지금과 같은 행정구역을 이루게 됨
    -1986년울진읍 죽변출장소가 죽변면으로 승격, 평해읍 후포출장소가 후포면으로 승격되면서 지금과 같이 2읍·8면·1출장소가 되었음
    -1983년서면 전곡리 일부(승부역 일대)가 봉화군 석포면으로 편입됨
    -1980년평해면이 평해읍으로 승격됨
    -1979년울진면이 울진읍으로 승격됨
    -1967년북면에 하당출장소 설치함
    -1963년강원도 소속이었던 울진군이 경상북도에 편입됨. 이 때 온정면 본신리는 영양군 수비면에 편입됨
    -1953년평해면에 후포출장소 설치함
    -1953년울진면에 죽변출장소 설치함